미국 메디케어가 사상 처음으로 제약사들과 약품 가격을 협상하며 일부 가격을 낮추는 데 성공했지만, 협상된 가격은 여전히 다른 선진국에 비해 최대 3배 이상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번 조치가 미국 환자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줄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는 가운데, 미국의 약품 가격 구조와 이를 둘러싼 문제점이 다시 한번 주목을 받고 있다.
미국의 약품 가격이 유독 높은 이유로는 시장 중심의 의료 시스템이 꼽힌다. 캐나다와 유럽의 많은 선진국은 정부가 약품 가격을 직접 통제하거나 협상해 낮은 가격을 유지하는 반면, 미국은 제약사와 민간 보험사 간 협상에 의존하는 구조로 운영된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제약사들이 가격 책정에서 더 큰 권한을 가지며, 높은 가격을 유지하기 쉬운 구조적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제약업계는 연구개발(R&D) 비용 충당과 혁신을 명목으로 가격 책정을 정당화하고 있지만, 비판론자들은 실제로 마케팅과 광고에 더 많은 자금이 투입된다고 지적한다.
2023년 메디케어는 인슐린 등 주요 약품 10개에 대해 협상에 성공하며 일부 가격을 낮췄다. 예를 들어, 한 당뇨병 약품의 경우 최대 50%까지 가격이 인하됐다. 그러나 이러한 약품은 전체 처방 약품 시장의 극히 일부일 뿐이고, 협상을 통해 낮춘 가격조차 캐나다나 독일 등 다른 나라에 비해 두 배 이상 비싼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협상이 미국 내 기존 약품 가격의 상승을 억제하는 데 초점을 맞췄을 뿐, 글로벌 수준으로 낮추는 데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제약사들은 이번 협상 결과에 반발하며, 약품 가격이 지나치게 낮아질 경우 신약 개발과 혁신이 둔화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이 세계 신약 개발의 중심지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높은 약품 가격 때문이라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미국이 글로벌 신약 개발 비용의 대부분을 부담하며 사실상 다른 나라들의 약품 가격을 보조하고 있는 구조가 비효율적이라고 반박한다. 한 보건정책 전문가는 “미국 소비자들은 글로벌 혁신의 대가를 과도하게 치르고 있다. 같은 신약이 캐나다나 독일에서는 훨씬 저렴하게 제공되는 현실에서, 미국 환자들은 불공정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메디케어 협상은 분명 의미 있는 첫걸음으로 평가되지만, 환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제약사들의 가격 책정 구조를 보다 투명하게 만들고, 글로벌 수준에 맞춘 가격 상한선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현재 미국 내 환자 중 약 25%가 약품 가격 부담으로 인해 처방을 포기하거나 약을 절반만 복용하고 있는 상황은 이러한 개혁의 필요성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
약품 가격 논쟁은 단순히 경제적인 문제가 아니라, 미국 의료 시스템의 근본적인 구조와 윤리를 시험하는 중요한 사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메디케어의 이번 협상이 약품 가격 문제 해결의 실질적인 돌파구가 될 수 있을지, 아니면 더 큰 개혁을 위한 출발점에 불과할지는 향후 정책과 정치적 의지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