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의료 시스템에 심각한 위기가 닥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차기 트럼프 행정부가 강경한 이민 단속 정책을 예고하면서, 약 35만 명에 달하는 비시민권 의료 종사자들이 추방 위험에 놓였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번 주 미국의학협회지(Journal of the American Medical Association, JAMA)에 발표된 이 연구는 의료 현장에서 없어서는 안 될 이민자들의 역할을 조명하며, 이들이 사라질 경우 환자 치료와 의료 서비스 전반에 큰 혼란이 초래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연구를 주도한 레나 S. 아자로프(Lena S. Azaroff) 박사는 “지금 미국 의료 시스템은 인력 부족으로 힘겨운 상황을 겪고 있다. 여기에 비시민권 근로자들이 대거 추방된다면 그 여파는 상상 이상일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간호사, 의사, 병원 보조원, 시설 유지 직원, 그리고 장기 요양 서비스 제공자 등 다양한 직군에서 활동하는 이민자들이 의료 현장의 핵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장기 요양 분야에서는 이들이 전체 인력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며, 노인 환자들을 돌보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은 선거 운동 기간부터 대규모 추방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는 그의 첫 임기 때 국경에서의 강경 정책과 직장 내 단속을 떠올리게 한다. 바이든 행정부 들어 추방 속도가 다소 완화되었지만, 새 행정부가 출범하면 이 같은 흐름이 급격히 뒤바뀔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의료 종사자들 사이에서는 불안이 커지고 있다.
추방 위험에 처한 이들 중 많은 수가 영구적인 법적 신분을 갖추지 못한 상태다. 캘리포니아에서 12년째 숙련 간호 시설에서 일하는 마리아 곤잘레스(Maria Gonzalez, 가명)는 “저는 매일 환자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왔다. 그들은 제게 가족이나 다름없다”며 눈물을 삼켰다. 그녀는 “만약 제가 떠나야 한다면 누가 이들을 돌볼 수 있을까? 이미 인력이 부족해서 힘든데, 더 큰 공백이 생길까 걱정된다”고 토로했다. 이 같은 이야기는 미국 전역에서 들려오는 공통된 목소리다.
미국병원협회(American Hospital Association, AHA)는 이 문제의 심각성을 공식적으로 제기했다. AHA는 “팬데믹 이후 병원들은 인력난으로 고전하고 있다. 비시민권 근로자들이 떠난다면 의료 서비스의 질과 접근성이 크게 떨어질 것”이라며 정부에 신중한 접근을 요청했다. 특히 응급실과 장기 요양 시설에서는 이미 인력 부족으로 환자 대기 시간이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정치적 논쟁도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이민 옹호 단체들은 이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한다. 전국이민포럼(National Immigration Forum)의 사라 김(Sarah Kim) 정책국장은 “이들은 세금을 내고, 가족을 부양하며, 무엇보다 의료 시스템을 지탱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그들을 내쫓는 건 단순히 개인의 삶을 망치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사회 전체를 위협한다”고 비판했다. 반면, 이민 단속을 지지하는 측에서는 다른 입장을 내놓는다. 한 보수 단체의 마크 레이놀즈(Mark Reynolds)는 “미국 시민들이 이 일자리를 맡을 수 있도록 훈련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외국인 노동에 의존하는 건 장기적인 해결책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아직 트럼프 행정부가 구체적인 추방 계획을 공개하지 않은 가운데, 의료계는 불확실성 속에서 대비책을 고민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들에게 임시 노동 허가나 시민권 취득 기회를 제공하는 방안을 제안하지만, 새 행정부 출범이 코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실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아자로프 박사는 “이건 단순히 이민 정책의 문제가 아니다. 잘못된 선택이 공중 보건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며 강한 우려를 나타냈다.